Q&A
HOME >> 커뮤니티 >> Q&A

[서울=뉴시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oreo 작성일25-04-14 10:57 조회5회 댓글0건

본문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2.02.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추 전 원내대표가 12·3 비상계엄 직전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이라고 밝혔다.추 의원은 이날 언론 공지에서 "계엄전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재소장 후보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 박 원내대표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이라며 "박 원내대표에게 이 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로도 언급한 바 없다"고 했다.박 원내대표는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해 비상계엄 직전 추 전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재 소장으로 앉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라며 "한덕수 총리의 이완규 처장 지명은 그 연장선에 있고 이는 내란 세력의 헌재 장악 시도"라고 말했다.공감언론 뉴시스 ironn108@newsis.com [오문수 기자]▲ 녹동항 앞에 설치된 드론 공연장에 소록도를 상징하는 사슴동상이 서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섬이 소록도이다ⓒ 오문수 일제강점기 한센병에 걸렸던 환자들이 순천역이나 벌교역에서 내려 소록도가 보이는 녹동항까지 걸었던 '눈물의 길'을 따라 도보여행에 나선 필자의 마지막 구간은 고흥읍에서 녹동항까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흥은 기후가 온난하고 먹을 거리가 풍부해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세종 23년(1441년)에 현의 이름을 고흥의 '흥(興)'자와 남양의 '양(陽)'를 조합해 '흥양현'이라 칭한 고흥은 치소를 주월산 아래(현 군청) 자리에 정하고, 흥양읍성을 축성했다. 1895년에는 흥양군 읍내면이 되었다가 1914년 부군폐합시 고흥군 고흥면이 되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79년 5월 1일 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 고흥 읍내에 있는 옛 고흥관아 모습ⓒ 오문수▲ 풍양군 고흥유자축제장 모습. 풍양은 대한민국에서 유자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오문수 고흥읍을 지나 풍양면으로 가니 유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유자는 온대 및 아열대 기후를 선호하는 나무다. 유자는 10˚C 이상에서 잘 자란다. 유자 재배에 최적의 기후를 지닌 풍양면은 우리나라 최대 유자 산지이다. 녹동을 향해 조금 더 걸으니 '문관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도로변에 세워져 있었다. 조선조 세종 때 장흥부의 목장이었던 도량현이 지금의 도양읍 관리에 있었고 도덕면 성항에도 목장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는 '문곶(門串)'이라고 하였다. '문곶'은 조선 초기 '축두포(지금의 풍양면 축두)에 병선이 주둔했음을 볼 때 녹도만호 도량현 감목관을 지켰던 검문소라고 볼 수 있다. 마을 앞에는 '안경못'이 있었는데 연꽃이 만발했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 앞뒤에 있는 바다를 간척해 앞에는 '풍도들', 뒤에는 '고흥만 평야'가 되어 풍요로운 농경 위주의 마을이 되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상호명 신성사 | 대표자 박한규 | 사업자등록번호 106-50-64457 | TEL 02-713 –3691 | FAX 02 - 716 - 8564 | ADD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58길 17 나우빌딩 2층 | E-mail help@sscom.co.kr

Copyrightsⓒ2016 신성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