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아침메모 12월 17일(화요일) 오늘 공모주 청약, 파인메딕스,,,삼양식품, 중국 공장 건설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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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loria 작성일25-01-09 08:30 조회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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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장 안녕하세요! 이부장입니다.이번 포스팅에서는 중국이 세계 공장이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중국과 오랜 기간 거래를 해야 하는 바이어분들이 알고 있으면 중국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꼭 필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재미 삼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저는 그동안 중국 제품을 수입해오면서 한 번쯤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왜 중국에서는 못 만드는 게 없을까?어쩌다 중국이 전 세계 상당수의 공산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공장 대국이 되었을까?집권당시의 덩샤오핑덩샤오핑의 집권중국은 잘 아시다시피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기간까지는 철저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하지만 집단생산·집단농장 실행 등 현실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대약진운동'정책의 결과로 농산물과 소비재의 생산율은 심하게 저하되었고 기근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죽거나 배고픔을 견디며 살아야 했죠.반면 오늘날의 거대한 경제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그다음 지도자인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덕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덩샤오핑 집권 이전까지는 국가가 거의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로 얻은 자원과 부산물을 철저히 계획하에 배분하는 공산共產체제였기 때문에 외세의 압력과 자본가의 영향이 미미하여 공산당은 자연스레 본인들을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오래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만약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동시에 외국자본이 많이 유입되고 중국 내 새로운 중국공장 자본가계급이 대거 등장한다면 공산주의라는 사상 아래 권력을 유지해온 공산당의 집권 명분이 약해지거나 와해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당내 반대파 관료들의 목소리도 있었겠죠.하지만 놀랍게도 덩샤오핑은 끝내 공산당의 정치적 집권은 계속 유지하면서 중국을 경제적인 극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체제 유지에 실패해 무너진 소련과는 반대로 중국공산당은 정권은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로의 탈바꿈을 성공한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수없어요ㅎㅎ.러시아의 푸틴이 과거 인간 백정으로 불렸던 독재자 스탈린의 여러 개발정책을 좋게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중국의 덩샤오핑 역시 독재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자국 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랍니다.개혁개방정책사실 중국의 그간 어떠한 개혁보다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었습니다.중국의 지도부는 나라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재정을 긴축하고 다시 자력갱생을 노리기보다는, 직접 국경문을 활짝 열어젖혀 거대한 글로벌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본인들이 처한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보다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덩샤오핑은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시장경제 또한 자본주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무적의 논리를 내세우며 강력한 개혁을 추구했습니다.여기서 중국 중앙은행의 총재였던 주소천周小川이라는 사람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제조업의 개방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제조업 개방에 중국공장 대한 나의 관찰 결과로 보면 비교적 일찍 개방을 시행하였던 업종의 대부분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산업 내에서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였다. 즉, 개방이라는 건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며 시장의 역동성과 경쟁 체제는 최적화된 자원 효용을 가능케한다.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중국 개혁·개방 정책에서의 가장 핵심은 바로 제조업의 부흥이었습니다.중국은 시장 개방을 곧 제조업의 개방으로 봤고 제조업만이 가난한 중국 국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광동성 주민들의 타오강루트, 그리고 도망도중 총에 맞은 사람의 사진개방의 시작, 광동성 심천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는 어디였을까요?바로 심천입니다. (심천 외에 세 군데가 더 있었지만 심천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여러분이 알고 있는 광동성 지역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도시들이 많습니다.광저우, 심천, 주하이, 불산, 중산시 등등.그리고 오늘날의 심천은 중국의 4대일선도시, IT의 메카, 과학기술의 도시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사실 심천은 몇십 년 전만 해도 매우 낙후된 농촌지역이었으며, 경제특구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타오강逃港이 계속하여 벌어지고 있었습니다.타오강이란 간단히 말하면 당시 중국 내륙 국민들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으로 도망간다는 뜻입니다.당시 심천을 비롯한 광동성의 주민들은 먹을 게 없어 그날 하루 살아남는 걸 걱정했을 정도로 지극히 가난했고 더는 중국공장 그런 나날들을 지속하고 싶지 않아 약 10~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홍콩 대륙으로의 도망을 택했습니다.제 생각엔 홍콩으로만 도망간 게 아니라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로도 많은 사람들이 불법 이주를 했던 것 같습니다.저도 코로나 이전에 마카오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회사에서 연세가 많으신 회사 동료들도 있었습니다.그분들 중 대부분이 젊었을 때 중국에서 마카오로 도망을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왜 심천이었을까?광동성 해안선의 주변 국가들을 보면 그 옛날 중국인들의 후손인 화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국가도 많고, 중국과 뿌리가 같은 국가도 참 많습니다.싱가포르, 대만 등은 당시 발전된 경제를 가진 국가였고 심천의 경우 홍콩/마카오 등 서구세력의 지배 아래 경제·문화적으로 선진화된 지역과 인접해있습니다.게다가 그런 인접 국가들의 공통점 역시 앞서서 해외자본의 투자를 허가하고 수출가공구역과 자유무역항을 만들어 산업을 발전시키고 물질적 풍요를 이룬 국가들이기 때문에 이웃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그들로부터 배울게 정말 많았습니다.참고로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대만은 당시 대한민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습니다.그런 인접 국가의 눈부신 발전에 영향을 받아 중국의 국무부는 1979년 광동성의 '바오안 구'를 '심천시'로 승격시켰으며, 이듬해인 1980년 8월에는 전국 인민 대표회의에서 심천시의 327.5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면적을 경제특구 시범지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심천의 현재와 70~80년대의 심천의 대조적인 모습제조업 중국공장 부흥을 위해 피의 길을 걸어야 했던 광동성당시 심천시의 입장에서는 경제특구로 지정된 게 기쁜 일이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중국의 빈곤문제 해결의 첫 바통을 받은 심천의 어깨는 오히려 무거웠습니다.그 이유는 개방은 됐지만 산업 발전의 기초가 되는 인프라를 건설할 자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 공장을 짓고 경제를 일으킬까요?그래서 광동성(심천)의 지방정부는 덩샤오핑 중앙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지도자 덩샤오핑은 이를 거절했습니다.덩샤오핑은 광동성 지방정부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중앙정부가 줄 돈은 없다. 하지만 정책은 줄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피의 길을 걸어서라도 살아남아라.덩샤오핑의 말대로 심천은 개방과 동시에 피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하지만 정부의 약속대로 정책적인 지원은 실행되었기에 심천에서는 외자유치와 은행 대출이 허용되고, 각종 경로를 통해 모금을 하는 등 외부의 힘을 빌려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중화권의 도움그럼 돈은 없고 정책만 있었던 심천이 경제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이때 당시 홍콩, 대만 등 일찌감치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들을 비롯해 싱가포르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에 정착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자들이 많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중국 출신의 화교들이었습니다.당시 중화권을 제외한 다른 문화권의 외국인들 입장에선 중국이 아무리 시장을 개방했더라도 공산국가라는 이념적 차이와 일당 중국공장 독재정부라는 문제 때문에 중국정부를 믿지 못하였고, 섣불리 투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반면 중국 출신의 화교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국가인 중국에 과감히 투자를 하였고 저렴한 인건비와 땅값을 기반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중국 투자의 첫 포문을 연 화교기업들과 홍콩, 타이완이 중국 대륙에서 승승장구하는 걸 보고 외국인들도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중국의 기관들과 회사들은 처음 우려와는 달리 약속을 잘 지켰고, 해외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지도 않았으며, 투자자들이 벌어들인 돈을 해외로 보내는 것 또한 제한을 하지 않았습니다.이렇게 외국자본가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중국은 더 많은 국가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훨씬 많은 공장이 들어섰죠.그걸 실현한 지역이 바로 심천입니다.홍콩, 대만, 마카오, 동남아권 화교들이 가져온 것은 비단 자금뿐만이 아니었습니다.기술·인재·진보적 사상·관리 시스템 등 여러 요소들을 중국 사회에 주입시켰고, 이는 현재 중국의 산업 발전에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삼래일보三來一補중국의 제조업 성장 전략은 바로 삼래일보 전략이었습니다.원자재를 수입후 가공 후 수출샘플을 가져와 가공 후 수출부품을 들여와 가공 후 수출수출로 얻은 재화를 다시 원자재와 부품 수입에 재투자하여 가공 및 생산.바꿔 말하면, 해외자본가들은 설비, 재료, 샘플, 또는 기술을 중국 공장에 제공해 주고 중국은 그들에게 값싼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그렇게 주문생산된 제품은 중국공장 해외로 수출되어 다른 나라에서 판매가 됩니다.대표적으로 심천 바로 옆에 있던 홍콩이 이런 중계무역을 통해 중국과 윈윈전략을 세우고 많은 수익을 챙겼습니다.즉 생산라인은 중국에 두고 유통라인은 홍콩에 두면서 양측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챙긴 것이죠.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시 이번 포스팅의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거대한 인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저렴한 노동력, 저렴한 토지, 완전한 공업화, 다수의 훈련된 숙련공들, 비즈니스 운영환경개선, 그리고 이 모든 걸 주관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정부의 대대적인 인프라 유치, 그리고 일당독재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강력한 정책 추진력 덕분에 중국의 제조는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도 빠르게 굴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결론이제 중국은 1·2차 산업을 토대로 발전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3·4차 산업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심천의 경제발전 쾌속열차에 탑승한 여러 자국 내 기업들이 자체적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주요 대도시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기타 선진국들 못지않은 물질적·문화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일각에서는 여전히 중국의 공장 역할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인도·베트남과 같은 중국공장 신흥국가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그러나 추축과는 다르게 세계 공산품의 공급자 역할이 중국에 가져다주는 정치·외교적 이익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당분간 그 자리를 쉽게 넙겨줄것같지않아보입니다.참고로 중국은 여전히 후커우户口제도 라는게 있어서 국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즉, 다른 도시로 이주를 했더라도 주민등록에 제한을 두고 있어서 실질적 거주는 가능하여도 정식으로 그 도시의 시민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그래서 예를 들면 농촌 출신의 사람이 일자리를 위해 도시로 이주를 하면 교육, 주택, 의료, 복지 등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는 경우가 생긴답니다.(반면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소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그 이유는 농촌과 소도시 인구의 감소를 막기 위함도 있지만, 생산공장이 대거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정주인구가 너무 몰리면 물가와 집값도 오르고, 그로 인해 인건비 또한 상승할 테니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전략으로 세계 공산품의 공급망을 쥐고 있던 중국정부에게는 좋을 게 없겠죠.이러한 이유로 앞으로 근 10년까지도 중국 공산품의 점유율은 크게 내려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다음번에는 다시 중국 수입과 관련한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안녕하세요! 이부장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많은 바이어들이 구매대행을 이용한 1688제품을 소싱 할 때 중요...안녕하세요! 이부장입니다. 날씨가 정말 가을 같지 않습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중국공장 더웠다가 일교차도 너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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