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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콘서트 10회(창원) 4/9] 지금 중국 13억 인민의 삶 속에서 어떤 역사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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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ika 작성일24-09-28 04:43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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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구려$ 전시기간: 2024.09.12.(목) ~ 2024.10.13.(일)✔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3,4전시실✔ 시간정보: 화,목,금,일 10~18시, 입장마감 17시 / 수,토10시~21시, 입장마감 20시 (매주 월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입 장 료 : 무료(덕수궁입장료 별도)✔ 오디오도슨트 미제공✔ 사진 촬영 가능(* 김환기 작품 제외)‘수집’은 조사연구, 전시, 보존, 교육, 출판 등 미술관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미술관의 근간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수집 방식으로는 ‘구입’과 ‘기증(또는 수증(受贈))’ 외에 ‘관리전환’이 있다. ‘관리전환’이란 정부기관, 공공기관이 소장한 미술작품을 해당 기관의 요청에 따라 미술관이 관리를 이관받아 소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2023년 12월 기준) 관리전환된 작품은 미술관 전체 소장품 11,560점 가운데 217점(미술자료 별도)으로 1.87%를 차지한다. 이번 전시는 2012년 “정부기관에서 취득, 관리하던 미술품을 보다 전문적,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미술은행이 설립되기 이전, 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된 작품과 미술자료 일부를 소개한다.​작품의 출처 또는 소장이력(provenance)은 작품의 진위를 확인하는데 유효하고 작품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작가의 삶, 작품 자체의 미적 가치와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최근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말해주듯, 유명 소장가의 소장품은 그/그녀의 안목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소장가가 개인이 아니라 정부기관일 경우, 소장이력은 작품의 질적 가치는 물론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게 만든다. 관리전환 소장품은 구입 소장품만큼 미술관의 소장 정책이나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 전 국가가 미술계 진흥, 국민의 문화향유권 제고 등을 위해 지원, 구입한 작품인 만큼 한국 근현대사 및 미술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1. 구상에서 추상으로국립현대미술관은 1980년대부터 정부 소장 미술작품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 두 차례에 걸쳐 120여 곳의 소장품 5,400여 점의 실태를 파악했다. 그런데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소장 미술작품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조달청에 의해 '정부미술품보관관리규정'이 제정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이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과 조달청은 1998년 《정부소장미술품 특별전: 아름다운 성찬》을 개최한 바 있다.) 그 이전까지 정부기관 미술작품은 구입보다 기증 형태로 소장되고 해당 기관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국유재산법, 물품관리법 등 어느 법령에도 해당되지 않아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정부기관 소장 미술품은 문화적, 예술적, 경제적 가치가 있는 국가재산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이영일, 시골소녀, 1928, 창덕궁 관리전환(1975)춘천 이영일(1905~1984)은 192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하며 1925년 제4회 (조선미술전량회&gt입선으로 등단했고 제6회부터 연속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두리를 나타냈다. 섬세한 필치, 진한 채색의 일본화풍 인물화 및 화조화를 주로 제작했다. 작가는 1935년부터 숙명여고보에 재직하고, 정찬명 등 후학을 양성했으나 한국 전쟁 후에는 접골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전하는 작품이 매우 적다. ;는 1929년 제8회 《조선미전》 특선작으로 아기를 업고 있는 맨발의 소녀와 낱알을 줍는 소녀의 모습을 단조로운 필선, 흐릿한 윤곽선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이왕가 매입 후 창덕궁에 보관되다가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에 위치하던 때에 기획된 부산고구려$ 《한국근대미술 60년전》(1972)을 계기로 관리전환되었고, 2013년 등록문화재 제533호로 지정되었다.장우성, 귀목, 1935, 조달청 관리전환(1998)월전 장우성(1912-2005)은 김은호를 사사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 등 여러 차례 수상하며 젊은 시절부터 큰 명성을 얻었다. 초기에는 세밀한 필치의 채색화를 주로 제작하였으나 1940년대부터 전통 문인화의 정신과 형식을 계승하며 사의적이고 간결한 수묵담채풍 작품을 선보였다. 소와 함께 귀가 하는 어린 목동을 그린 ;은 본래 정무장관실에서 소장했으나, 《대한민국 정부수림 50주년 기념 정부미술품 특별전: 아름다운 성찬》(1998) 출품 후, 미술작품은 전문기관에서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1998년 조달청으로부터 관리전환되었다.이마동, 남자, 1931, 창덕궁 관리전환(1975)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7, 창덕궁 관리전환(1981)김주경(1902-1981)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으로 인상주의 화풍의 작품 세계를 전개한 동시에 비평가로도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의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1947년 월북해 평양미술학교 초대 교장이 되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도쿄미술학교 재학 시기에 그린 것으로 작품의 중앙에는 경성부청사(현 서울도서관)가 자리하고 우측에는 동형의 탑이, 건물의 뒤로는 북악산 풍경이 펼쳐져 있다. 양산을 쓴 여성이 거니는 길은 중경에서 꺾여 경성부청사에 이르며 좁아지는 길과 중첩된 건물의 배치, 근경의 커다란 나무와 원경의 작은 봉우리는 공간감과 깊이감을 더한다. 이 작품은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으로 전시 직후 이왕가에 의해 구입 및 보관되어 오다 1970년대 창덕궁의 한 창고에서 발견되었고,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소장처를 옮겼다.김인승, 홍선, 1954, 대통령비서실 관리전환(1985)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출신의 지연 김인승(1911~2001)은 한국 아카데미즘 화풍의 전통을 확립한 작가다.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은 추천작가 자격으로 195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전통 한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의 여성 모티프로 한다. 안정된 구성과 절제된 채색은 차분한 인상을 주지만 의상에 활용된 원색과 중앙의 빨간 부채로 경쾌한 느낌을 냈다. 이 작품은 1985년 대통령비서실로부터 관리전환된 것으로 캔버스 뒤 라벨에는 '4287년(1954년) 성탄 국회의장 이기붕 증정'이라 쓰여 있다. 이로써 작품은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이 입수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측된다.손순영, 좌상, 1972, 제2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공부장관상 수상,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73)유영교, 해초 따는 여이, 1974,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74)유영교(1946~2006)는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이탈리아 국립 로마미술아카데미와 대리석의 산지인 토스카나 카라라에서 수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1987년 영구 귀국하여 한국에서 활동했다. 작가는 대학원 시절에 1973년 제2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 1974년 제23회에서 국회의장상, 같은 해 제24회 《목우회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일찍이 인정 받았다. 유영교는 모자상, 여인상과 같은 일상적 소재나 종교적인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석조 구상 조각을 제작했고 말년에는 철재를 활용하여 추상, 키네틱 조각을 실험하기도 했다. 바다의 전설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알려진 ;은 여인이 바다로 추락하는 모습을 바다와 여성의 인체를 하나 의 덩어리로 형상화하여 동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전뢰진, 사색, 1957,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 관리전환(1992)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전뢰진(1929~)은 평생 화강암, 대리석을 재료 삼아 조각에 전념했다. 초기에는 인물상을 주로 제작하였으나 점차 자연과 사람의 융화를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장 관상을 수상한 ;에서 볼 부산고구려$ 수 있는 환조와 부조, 도식적인 형태는 전진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중요 미술품의 효율적인 관리 보존 및 활용을 위해 전문 기관에서 직접 관리함을 이유로 1992년 국립중앙극장으로부터 관리전환되었다.김창락, 사양, 1962, 대통령비서실 관리전환(1985)문원 김창락(1925~1989)은 대구 출신 화가 서진달에게 유화를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1954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했다.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이듬해 ;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특전으로 2년간 파리에서 수학했다. 국전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지냈고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아버지를 모델로 삼아 그린 것으로 따뜻한 색채와 부드러운 필치가 서정적이고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아버지에 대한 정감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박기태, 노란 양산, 1974, 대통령비서실 관리전환(1985)박기태(1927~2012)는 경주예술학교에서 손일봉을 사사하고 수채화를 재료로 한 인물화를 주로 제작했다. 5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Academi de la Grande Chaumiere)에서에서 수학했다. 은 1974년 제2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작으로 불투명 수채화 기법을 토대로 즉각적이고 활달한 필치로 인물을 표현했으며 화사한 색감의 노란 양산과 빈 배경은 인물과 대비가 되어 그림을 보다 선명하게 만든다.김진명, 화실, 1967,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청와대 관리전환(1987)장두건, 정물(장미꽃), 1975,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리전환(1976)박영성, 회고, 1974, 대통령비서실 관리전환(1984)박영성(1928~1996)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도자기, 유물, 민속품 등 향토적인 정물을 소재로 삼은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특히 한국수채화협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수채화를 즐겨 제작했다. ;는 1974년 제23회 《대한 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대통령비서실에서 소장하다 1984년 우수미술작품 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하면서 미술관으로 소장처를 옮겼다. 중국식 청동기, 일본식 자기, 한국의 고가구, 곰방대와 화살촉, 조류 박제 등 옛 기물과 오브제들을 한 화면에 배치시키고 과감한 부감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군데군데 거친 붓질을 사용해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김숙진, 불상, 1973,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74)김숙진(1931~)은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교부장관상 수상을 시작으로 이후 3년 연속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58년 구상미술작가들과 함께 사실주의를 표방한 목우회 결성에 참여했고 홍익대, 세종대 등에서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앵포르멜, 기하학적 추상 등 다양한 화풍이 혼재하던 당대 화단에서 김숙진은 일관되게 정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했다. 여인상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반가사유상을 그린 ;은 작가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적, 전통적 소재 정물화, 인물화가 다수 제작된 1970년대 시대상을 보여준다. 문화공보부가 창작활동 지원책 일환으로 구입한 이 작품은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되었다.장두건, 한강변 풍경, 1964, 감사원 관리전환(2002)초헌 장두건(1918~2015)은 특유의 미감이 가미된 사실주의 화풍의 작품 세계를 펼쳤다. 작가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메이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서울사대부중학교 등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57년 도불하였다. 1959년에는 프랑스의 관전 르 살롱(Le Salon)의 유화 부문에서 ;은 한국의 자연을 소재로 풍경화라는 장르에 접근하는 작가의 방식을 짐작케 하는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조달청이 주최한 전시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정 부미술품 특별전: 아름다운 성찬》(1998)에서 감사원 소장품으로 선보인 부산고구려$ 바 있으며 2002년 관리전환되었다.김원, 서울전경, 1972,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관리전환(2007)김원(1912~1994)은 평양 출신으로 일본 데이코쿠 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하고 광복 후 평양에서 교사로 있다. 1947년에 월남하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입선했으며 1954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추천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작가는 유학 시절에 접한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화풍을 형성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 등 을 표현하는 것에 천착했다. ;은 멀리 보이는 산과 도시 풍경이 한 화면에 담겨 있으며 김원의 사실적 자연주 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근대미술 60년전》(1972) 출품 후 미술관에 위탁되었다가 2007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리전환되었다.박서보, 원형질 No.64-1, 1964,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전환(1973)박서보(1931~2023)는 앵포르멜, 단색화의 기수로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를 선도하며 독보적인 화업을 일군 작가다. 원형질은 살아 있는 세포에 들어 있는 유동성 물질을 뜻하는 말로 생명 활동에 기초가 된다. 작가는 1960년대초 부터 원형질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 미술평론가가 박서보의 원형질 연작이 절규하는 인간의 영상이라 평했듯, ;은 전쟁의 상흔, 젊은 세대의 절규, 허무, 항변이자 생존에 대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국전을 내세운 젊은 앵포르멜 작가들은 제도권에 곧 편입되었고, 국제비엔날레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이림, 영, 1965, 대통령비서실 관리전환(1984)이림(1917~1983)은 박광진에게 유화를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은 추상적인 이미지와 두터운 유화의 절감, 독특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965년 제1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40세까지 고향인 마산에 머물며 농어촌의 삶과 풍경, 일상적 사물을 소재로 한 구상 회화를 주로 제작했으나 1959년 서울에 정착한 이후 추상화로 선회했는데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급변하는 시대와 맞물려 작품 경향이 변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전 수상작으로 대통령비서실에서 소장하다 1984년 10월 우수미술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하면서 소장하게 되었다.박상옥, 후방의 아해들, 1958,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관리전환(2007)박상옥(1915~1968)은 1939년 일본 데이코쿠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조선미술전람회와 일본의 재야전인 《니카텐》 등에서 활동했다. 195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후 추천작가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고 목우회 창립에 참여했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 살았던 종묘 옆 술내골(현 인의동)에서의 추억은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보인다.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담아 한옥 담벼락을 배경으로 씨름하며 노는 아이들을 투박하고 질은 색채로 표현했다. 우측에서 볼 수 있는 '북진통일'이라는 문구는 한국전쟁 시기에 등장한 구호로 당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한국근대미술 60년전》(1972) 출품 후 미술관에 위탁 되었다가, 체계적인 관리와 대국민 관람 서비스를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2007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리전환되었다.2. 시대의 기록배렴, 심산춘래, 1930년대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전환(2013)제당 배렴(1911~1968)은 한학을 공부한 뒤 이상범의 청전화숙에서 수학했다. 해방 후에는 이응노, 장우성 등 과 함께 새로운 전통회화를 모색하고자 한 '단구미술원'을 결성했다. 복숭아 꽃이 만발한 산속의 봄 풍경을 그린 ;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었으나 박물관, 미술관의 소장품 성격의 재정립 필요성과 근대미술 연구 및 전시의 일원화를 위해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었다.고희동, 추경산수, 1941,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75)춘곡 고희동(1886~1965)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다. 고희동은 안중식 문하에서 부산고구려$ 전통 회화를 익히다 일본 유학(도쿄미술학교)을 계기로 서양화를 한국에 도입했는데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다시 동양화가로 전향했다. 가을 풍경을 쓸쓸하게 담아낸 ;는 미점과 피마준과 같은 전통적인 화법을 반영하면서 근경은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등 서양화법과 동양화의 절충을 시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노수현, 산수화, 연도미상,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0)심산 노수현(1899~1978)은 1914년 서화미술회에 들어가 안중식과 조석진 문화에서 서화를 배웠고, 1923년에는 이상범, 변관식과 함께 '동연사'를 결성해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과 근대화를 모색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그의 산수화는 실경을 바탕으로 정신세계를 반영한 이상적인 산수화로 평가된다. ;는 힘차게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중첩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깊은 산세를 표현한 작품으로 재무부(기획재정부의 전신)가 인수한 미술작품 80여 점을 1980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하면서 소장하게 되었다.민경갑, 영산홍, 1977,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0)바위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는 화려한 색감의 연산홍은 완연한 봄의 기운을 풍긴다. 이 작품은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조형실험을 전개한 유산 민경갑(1933~2018)의 뛰어난 기본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유산은 1970년대 이후 전통적인 수묵담채와 진채의 구분을 넘어선 특유의 발묵, 발색 기법을 바탕으로 대자연의 섭리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본래 재무부(현 기획재정부)가 인수했던 작품으로 1980년 4월 허백련, 노수현 등의 작품을 포함한 89점이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하면서 소장하게 되었다.천칠봉, 백운대, 1975, 국립극장 관리전환(1992)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하며 소위 '국전파로 불리는 천칠봉(1920~1984)은 독학으로 서양화를 익혔으며, 사생을 바탕으로 한 구상 작품을 주로 그렸다. 손응성, 변시지 등과 함께 창덕궁 후원을 즐겨 그려 '비원파'라 불 리기도 한다. 백운대는 북한산 봉우리 중 하나로 작가는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가을 산의 모습을 아카데믹한 기법을 토대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처럼 한국적 정취가 담긴 풍경화 외에도 ;(1975, 새마을운동중앙회 소장) 등의 민족기록화도 다수 제작하였다.천칠봉, 승재전, 1974,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74)박광진, 팔당호수, 1975,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 관리전환(1992)김태, 태종대, 1975,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 관리전환(1975)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김태(1931~2021)는 평양미술대학 재학 중 월남하여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추상이 주류가 된 시절에도 대상의 본질적인 구조의 탐구를 계속했고 이를 구상미술로 구현했다. 어업에 종사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부산, 속초, 인천 등의 어촌과 항구를 즐겨 그렸다. 강한 붓 터치와 두터운 마티에르를 이용해 기암 괴석과 절벽으로 유명한 부산의 태종대를 표현적으로 담아냈다.민족기록화1950년대부터 미술계 내부에서 국사를 기록한 역사화 제작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민족기록화'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67년 7월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린 《민속기록화전》이다.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월남전까지 20세기 역사(특히 반공과 전쟁)를 주제로 삼았고, '목우회'를 중심으로 한 원로작가들뿐만 아니라 신진의 추상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유신 직후 1973년 국난극복의 사례를 미술작품화하여 민족의 긍지를 ㅎ마양한다는 목표 아래 '기록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선열의 위업, 성군 및 명현의 치적, 선현들의 학술적, 예술적 업적을 주제로 한 기록화를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제3공화국 당시 경제발전상을 담은 민족기록화 '경제편'이 우선 제작되어 1974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현 덕수궁관)에서 전시가 열렸다. 곧이어 호국과 부산고구려$ 전승,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기록화가 차례로 제작, 전시되었다. 전시가 끝나고 문화공보부는 출품된 작품들을 구입해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군사령부, 국회사무처 등에 임대했다. 1979년 책임소재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으로 이전되었다가, 1998년 소유권이 작품 주제와 관련있는 기관에 무상이전되면서 청와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현충사 등으로 소장처가 바뀌었다. 이 가운데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소장했던 일부가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 및 미술자료로 관리전환되었다.박광진, 근대화된 새마을 농촌, 1977, 청와대 관리전환(2002, 미술자료)박광진(1935~)은 홍대 재학 시절 대학생으로서 처음으로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하며 화단에 등장했다. 탄탄한 데생력을 토대로 고전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의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는 목가적인 전원 풍경화를 다수 제작했다. 황금 들판을 배경으로 수확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을 묘사한 이 작품은 1970년대 추진된 새마을운동으로 질서 있게 변화된 농촌의 모습을 담음으로써 당시 정부가 추구한 농어촌 지역의 발전을 이상화하여 전달한다.오승우, 포도원, 연도미상, 청와대 관리전환(2002, 미술자료)정창섭, 귤 수확, 연도미상, 청와대 관리전환(2002, 미술자료)정창섭, 건설현장, 1971, 국가정보원 관리전환(2016, 미술자료)정창섭(1927~2011)의 ;에는 1960~70년대 국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개간 중인 농촌의 풍경이 담겨있다. 경제 발전과 산업화는 민족기록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로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에 따라 공장, 댐, 고속도로 등의 국토 건설, 새마을운동/농가소득증대, 기계공업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다수 제작되었다. 작가는 데생력과 구도, 이 야기 전개 방식 등이 뛰어나 역사화로서 손색이 없는 다수의 역사 및 경제 소재 민족기록화를 제작했다.정창섭, 횃불, 1971, 국가정보원 관리전환(2016, 미술자료)김태훈, 행주대첩, 연도미상, 청와대 관리전환(2002, 미술자료)박각순, 살수대첩, 연도미상, 청와대 관리전환(2002)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행주대첩, 한산대첩 등 명장의 전승과 구국은 민족기록화의 주요 주제 중 하나로 살수대첩은 612년, 지금의 청천강 유역인 살수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수나라의 결정적 전투다. 일본대학에서 서양화를 배운 박각순(1918~2004)은 목우회 회원으로 사실주의 양식의 여성 누드화로 유명하다. 그런 그 역시 전쟁을 소재로 한 민족기록화를 제작했다. ;에 등장하는 을지문덕은 백마를 탄 모습으로 전쟁 지휘관의 위엄이 강조된 형상인데 이러한 기마상은 민족기록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도상이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민족기록화 전승편•경제편》(1975)에서 전시된 후 청와대에서 소장하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었다.박승근, 살수대첩, 연도미상, 청와대 관리전환(2002, 미술자료)박노수, 청향, 해외문화홍보원 관리전환(2010)남정 박노수(1927~2013)는 이상범을 사사하고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에 입선하며 등단했고, 이화여대와 서울대학에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채색과 수묵을 융합해 한국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남정은 초기에는 ;라는 제목으로 구입 및 소장해오다가 보관상의 이유로 201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되었다.조중현, 학, 연도미상,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 관리전환(1992)심원 조중현(1917-1982)은 김은호를 사사하고 1938년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후소회, 백양회 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새, 짐승, 물고기, 꽃 등을 수묵 또는 수묵채색으로 즐겨 그렸다. ;은 푸른색 물감으로 선염하여 표현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한 자태로 날개짓하는 학 두마리를 세필로 정밀하게 묘사하였다.박래현, 하얀 비둘기, 1961년경, 국립극장 관리전환(1981)우향 박래현(1920~1976)은 일본 여자미술전문학 교에서 일본화를 배우고, 재학 중 1943년 제22회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는 두 손을 모은 부산고구려$ 세 명의 여성과 하얀 비둘기 떼를 반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직선적인 화면 분할과 수직적인 형태감은 동양화의 현대화를 추구한 작가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정적인 분위기 또한 풍긴다. 이 작품은 본래 국립극장에서 소장하였으나 근대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미술관의 상설 전시에 활용하자는 판단에 따라 1981년 다른 작품과 상호 관리 전환(교환)되었다.표준영정'표준영정'이란 민족적 추앙을 받고 있는&quot역사상 위인과 우국선열 등 선현의 모습을 통일시킨 초상화를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 심의규정」에 따르면 '표준영정'은 문화체육부장관이 영정·동상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작한 영정을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한 영정이다. 표준영정은 1973년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충무공의 진영을 통일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같은 해 5월 8일 국무총리의 지시로 '동상건립 및 영정제작에 관한 심의절차 공고'를 통해 실시되었다. 당시 각종 기념사업회, 사당 등 민간단체에서 제각각 영정을 제작하자 국가에서 위인의 영정을 정리, 선정하고 허가,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4년 5월 기준 총 99점이 표준영정으로 지저오디었다. 역사적 기록물로서 표준영정은 샂거 초상화와 달리 국가가 선택한 일물에 대한 공적 기억이 되고,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이 사업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그 바탕 위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문화중흥을 달성하는 것을 화두로 삼았던 당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채용신, 전우 초상화, 1911,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전환(2013)석지 채용신(1850-194)은 산수, 인물 모두 잘 그렸는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서 태조, 숙종, 영조, 정조, 고종 황제의 어진 및 구한말 우국지상의 초상을 포함해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1906년 익산으로 낙향해서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전통화법을 제승하면서도 근대기에 수용된 서양화, 사진의 영향을 받아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초상의 주인공인 간재 전우(1841-1922)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일제가 국권을 빼앗자 벼슬에서 사임하고 제화도로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며 국권 회복을 도모했다. 석지는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의 반듯한 자세와 극사실적으로 재현한 표정을 통해 그의 강건한 성품을 전하고 있다.김기창, 김정호 영정, 1974,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0)운보 김기창(1914~2000)은 김은호를 사사하고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화단에 등단했다. 광복 이후 일본풍에서 벗어난 화풍을 모색, 1950년 대에는 아내 박래현과 함께 입체주의와 반추상을 도입한 새로운 양식의 실험하면서 점차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예술 세계를 확장했다. 채색인물화에 능했던 운보가 그린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1804-1866?)의 모습은 세밀한 얼굴 표현과 굵고 힘찬 의습선 등 전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운보는 이외에도 세종대왕, 을지문덕 등의 영정을 제작했다.송영방, 이차돈 영정, 1983,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3)우현 송영방(1936~2021)은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해 노수현, 장우성에게 배웠다. 우현은 산수화를 비롯해 인물화, 화조화, 사군자뿐만 아니라 불화, 삼회,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분야를 아우르면서 전통적인 화법을 토대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 작품은 목숨을 바쳐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이차돈(506-527)의 표준영정으로, 작가는 뒷면에 색을 칠해 은은한 느낌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을 적용해 단아한 청년의 모습으로 이차돈을 묘사했다.정탁영, 일연 영정, 1984,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5)수묵 추상화가이자 서울대학교 동양화가 교수로 후학을 양성 한 백제 부산고구려$ 정탁영(1937~2012)이 그린 일연(1206~1289)의 영정이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은 고려시대의 승려로 배경의 서안과 책, 붓 등은 그의 깊은 학문적 소양을 암시하며 야윈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에서 승려의 기품이 드러난다. 작가는 단색을 활용하여 인물의 의복을 평면적으로 처리했고 필치의 변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인 철선묘를 사용해 옷의 주름을 묘사했다. 문화공보부의 지원으로 정탁영이 1984년에 그리고 1985년에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작품이다.신영상, 최무선 영정, 1986,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7)최무선(1325~1395)은 고려시대 무관으로 1377년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각종 화약과 이를 활용한 무기를 처음 제작 및 사용한 발명가다. 전통 초상화의 형식을 따르는 이 작품 속 최무선의 곧은 콧날과 예리한 눈매는 그의 강직한 성품을 짐작케 한다. 이 영정을 그린 이는 서울대학교 교수와 대한민국미국전람회 추천작가 등을 역임한 노석 신영상 (1935~2017)으로, 그는 1960년대 초 묵림회에 참가한 이 후 지속적으로 한국화의 현대화, 추상화를 실험했다. 최무선 영정은 1987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이종상, 광개토대왕 영정, 1977,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리전환(1980)5천원권과 5만원권 지폐 속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영정을 제작한 일랑 이종상(1938~)은 원효, 장보고, 우륵 등의 표준 영정과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등 민족기록화를 제작한 바 있다. 일랑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하며 등단했고 동국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고구려 미술과 문화에 천착하여 고구려 벽화의 기법과 재료를 작품에 활용하였으며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광개토대왕의 영정을 완성했다. 용포 대신 비늘 갑옷과 투구, 칼을 잡고 있는 호방한 광개토대왕의 모습은 북방 민족의 생김새, 생활상을 반영한 것으로 정복 군주의 위엄과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김은호, 화조영모도, 1900년대초반,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전환(2013)이당 김은호(1892~1979)는 서화미술회에서 안중식과 조석진을 사사하고 이른 나이에 어진화가로 발탁되며 명성을 얻었다. 1925년 일본에 건너가 유키 소메이를 사사했다.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기에 서양화적 사실주의와 일본화적 장식성을 가미한 새로운 양식의 인물화로 유명하다.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미술 교육자로서도 활발히 활동, 그 제자들이 1936년 후소회를 조직해 한국 근현대 수묵채색화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김은호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전통적인 문인화조도의 계보를 이으면서 석란, 매화, 석죽, 국화, 모란, 오동나무, 연 꽃, 파초, 소나무, 난초 등을 몰골법으로 그려냈다.이응노, 화훼길상도, 1957,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관리전환(2007)대나무, 도자기, 사슴과 닭 등을 소재로 한 화훼도와 기명도를 토대로 전통 회화의 소재를 취해 그린 고암 이응노(1904~1989)의 ;는 전통적인 병풍화와 달리 대상을 자유 분방하고 율동감 넘치는 필선과 추상화를 통해 익살스럽고 재치있게 묘사했다. 추상적이고 표현적인 조형 실험을 전개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응노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2007년까지 문화 재청에서 소장하다 미술품의 체계적인 관리와 전시 등의 대국민서비스를 위해 같은 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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